인류는 차를 애초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이자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썼다. 그러나 싫증나지 않는 좋은 맛과 각성효과, 생산의 용이함 등으로 기호 음료로 발전하면서 음다(飮茶)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음다 문화"는 차나무와 물과 다구와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물질적 정신적 성과이다. 따라서 한 지역에 사는 민족의 오랜 음다문화는 그 민족의 생활관습과 민족적 특성, 실미적(審美的) 능력, 정신적 가치체계 등 크게 변하지 않는 내면적 바탕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문화의 외적 현상은 인접문화나 정치적 상황, 경제와 사회현상 등의 지배를 받아, 포용. 전이. 창조를 거쳐 변하게 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140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의 차문화는 부분적으로는 변화하면서 나무의 뿌리나 줄기와 같은 민족문화적 특성과 철학을 지녔으므로 다가올 시대에는 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한국 차문화는 다례. 다도철학. 음다풍속. 다구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1.儀式茶禮(Tea Ritual)의 발달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의식다례가 발달하였다. 평상다례와 구분되는 의식다례는 山神. 조상신. 가신(家神).누에신 등에게 차를 끓여 올리는 헌공다례와, 살아 있는 사람에게 격식과 예를 갖춘 행사로서 차를 드리는 진다의례(進茶儀禮)가 있다.

차는 사람이 몹시 좋아하며 몸에 유익하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효능이 있으므로 귀중한 음료였다. 따라서 사람이나 神을 대햐여 경건하고 기쁜 마음을 나타내는 최상의 대접으로 차를 썼다. 그리고 차의 각성효과는 신과 인과과 교감이 이루어지게 하고, 신에게 헌공한 차는 다시 인간이 마심으로써 뜻을 같이한다는 유대의식도 생기게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염원이 신에게 전달과고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간단한 제사에는 차를 제일 중요한 제물로 여겨 다례를 올렸다.

조상신 등의 혼령에게 차를 올린 최초의 사서(史書)기록은 661년에 가야국(A.D. 42-562) 시조인 수로왕에게 차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으며, 고려(918-1392)의 사찰에서는 승려나 불자의 혼령에게 차를 올린 기록들이 있다.

조선시대(1392-1910)에 왕실과 귀족층에서는 간단한 제사에서 차를 올렸는데 낮에 지내는 제사를 "주다례(晝茶禮)"라고 했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지내는 제사를 "별다례(別茶醴)"라고 하였다. 이러한 다례는 외국에는 없는 이름이다. 조선 말엽에는 서민층도 "주자가례"를 본 따 제사다례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고 기제사에 차를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예로 부터 산 사람에게 차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한 경우도 많았다.
팔관회나 정월 초하루의 조회, 조정의 큰 잔치, 중형(重刑)을 줄 때 등에 왕과 신하가 의식 진행절차에 따라 종중히 차를 마셨으며,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의례, 그리고 왕실의 행사로 태후나 왕자의 책봉, 왕태자 생일 축하 등에도 격식을 갖추어 진다의례(進茶儀醴:차를 들고가서 드리는 의식)를 행하였다.
근세에는 회갑연때에 부모에게 의식을 갖추어 차를 오리는 다례도 행하여졌다.

2.수양다도의 발달

한국은 중국과 달리 마시는 물이 맑고 좋으므로 단순한 마실거리로 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손님 접대시에 술이나 대용차도 흔히 썼다. 그런데 차의 중요한 특성인 각성효과와, 茶事에서 세밀한과 정성이 있으면 차의 맛이 크게 다르다는 점은 항상 공부하며 깊게 사유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잡념을 없애며 수양하게 하는 음료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즉 다사와 음다는 유가, 불가, 도가의 도에 이르는 길의 안내자인 동시에, 도에 도달한 경지의 마음과 정신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음다가 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는 앞선 기록은 설총(薛聰, ~692 ~746~)이 "차와 술은 정신을 깨끗하게 한다 (茶酒以淸神)"는 내용과, 최치원(崔致遠, 857~894~)이 차를 참선하는 노인이나 도가의 신선들이 좋아하는 선물로 인식한 내용과 한께, 자신은 차를 얻었으므로 근심을 잊게 되었다는 글에서 볼 수 있다.
수양다도를 중시한 대표적 다인으로 한국의 다도사상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은 이색(李穡, 1328~1396)이다. 그는 차를 손수 끓여 마시는 일을 誠意.正心.修身하는 일로 여기는 군자수신의 다도관을 가졌다. 즉 茶事는 유학의 달도(達道)를 위한 실천적 공부방법이었던 것이다. 또한 草衣 張意恂(1786~1866)은 다사의 泡法(우려내는 법)은 中道思想의 공부라고 하였고, 秋史 金正喜(1786~1856)는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道의 本體를 터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이웃나라와 마찬가지로 다도는 禪과 같다는 인식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다선일여(茶禪一如)는 승려뿐 아니라 선비들도 마찬가지여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 "차의 맛은 선의 맛", 혹은 "茗禪(Tea Zen)"이라는 글을 썼다. 또한 차는 부처라고 했으며, 7세기 보천(Bochun)의 불공다례에서 알 수 있듯이 차를 마시면 깨우쳐 오도(悟道)하게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여겼음을 史書나 詩文,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주(JoJu)의 "끽다거(차 한 잔 마시고 가게)"라는 의미로 흔히 쓰였다. 따라서 승려들은 평소의 다생활도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 수행으로 여겼다.

도가(道家)에서도 차를 마시면면 몸과 마음이 수양되어 득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가의 도인을 신선이라 하는데, 한국 신선사상의 근원은 중국 도가와는 별개로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신선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조선시대에와서 독특한 한국단학(丹學, Korea Dan-hak)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 도가적 다도사상은 미족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
차를 끓여 마시면 심재(Purification). 전일(Absorption). 좌망(Meditation)하여 도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귀중한 차를 정성들여 끓이는 일은 도를 닦는 과정이며, 차를 마신 후에는 득도한 뒤와 같이 자유롭고 조화로우며 자신과 사물을 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규보(1168~1241)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Teaism and Taoism are same"이라고 말했다.
음다를 수양방법으로 여긴 것은 선비나 승려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는 외로뭄을 달래고 마음을 다스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여겼고, 나아가 도를 깨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도 다생활이 마음을 수양하고 정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점이 중시되어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명상다례법을 수련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