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문사중심의 다도문화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일반적 음다퐁속에서 그 주체는 왕과 쥐족, 문사와 승려, 그리고 무인들과 백성들도 포함되어 그 폭이 넓었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생활문화로서 다도를 발전시켜 맥을 잇고 음다풍속의 주도적 역할을 한 계층은 문사(文士)들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다도의 전통은 무사(武士)중심이었고, 중국은 귀족계층이 주도하였다.

한국 차문화의 전성기이자 문인다도가 꽃을 피운 때는 고려 중엽인 12세기부터 조선초인 15세기까지와 조선 말엽 18.9세기이다. 고려때는 성리학자 다인이 주축이었고, 조선말에는 실학자 다인들이었다. 즉, 한국의 문인다도는 문장가 보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성한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茶詩文도 무척 많이 남겨, 70편 이상 남긴 문인으로 이색, 서거정, 김시습, 정약용, 신위, 홍현주 등 6인이나 되어 중국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문사음다풍습은 현대에도 이어져 학자나 예술가나 지도자층에 다인구가 많으며, 다도를 습득하고자 할 때에는 행다법의 수련뿐만 아니라 선조다인들의 고전 다서를 공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2.옛 관리의 다도 중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무를 행하는 관리들이 차를 마시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입법. 행정. 사법에 관여하는 간리는 음다를 업무로 여길 만큼 중시하였다. 그들은 정중히 차를 마심으로써 공무를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행할 수 있다고 였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법을 다루는 사헌부에서는 다시(Tea ceremony Time)를 행하였다. 조선초기에는 서울에 있는 관청 모두 다시를 행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다시를 행하는 청(廳 ; 마루)이 따로 정해져 있었으며, 때로는 다시가 업무의 전부이기도 했다. 또한 고려의 왕은 사형과 유배를 선고하는 의식에서 정중히 차를 마셨고, 이어 신하들도 격식에 따라 차를 마신 후 최종 결정을 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관리가 공무를 하기 위해 말을 달려가다가 쉬는 역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원(茶院)"이 많이 있었으며, 고려의 관리들은 다방관청에서 수시로 차를 마실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이 관리들이 다도를 중시한 것은 차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가사상의 영향이 컸다. 따라서 관리들은 평소에도 차르 마시며 청덕을 기르고자 노력하였으므로 한국은 청백리 다인들이 적지 않다.

3.다방군사(茶房軍士)

차문화가 크게 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조정과 왕실의 의식다례와 외국손님접대와 관리들의 다시(茶時)등을 원만히 행하기 위해 정부기관으로서 다방(Tea government office)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다방에는 여러 관직외에도 군사(Soldier)가 100명에서 수백명까지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왕과 태자가 궁궐밖에서 행사할때나 돌아올 때 물주전자와 이동화로, 다구와 차짐등을 운반하였고 다사(茶事)를 했으며 다방(Tea government office)에서 하는 일을 수시로 도왔다.